등을 이야기 안 할 수 없겠습니다.
뒤돌아서서 멀어져 가는 상대의 등을
응시할 때,
우리의 얼굴은 비로소 완전히
정직해지기 때문입니다.
우리의 얼굴이 이 계절 한 장의 잎이라면
그 뿌리는 두 다리도 배꼽도 가슴도 아니라
등에 묻혀 있습니다.
등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. 언제나 나는
돌아가는 내 등을 바라보는 너의 솔직한 얼굴이
궁금했습니다. 너의 첫 눈빛은
내 등 위로 홀씨처럼 날아와
내 등 속에 뿌리내리고
내 목을 곧게 뻗어 올려
내 얼굴을 피우고 표정을 뿜어냈지요.
내 얼굴 위에 벌과 나비와
마땅한 이름 없는 날벌레처럼
눈 코 입 귀가 날아와 앉았습니다.
그리고 잠시, 사람의 시간으로는 평생을
앉았다가 날아갑니다.
눈 코 입 귀가 날아가는 곳은
길섶 철쭉 같은 불길 속입니다.
내 얕은 얼굴로는 다 못 받은 너의 슬픔이
번번이 넘칠 때마다
우리는 등을 맞대고 울었습니다.
울컥 흘러넘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
대신 등을 얼굴처럼 맞대고 비비며 울었습니다.
사월이 지나면
너의 눈빛이 피운 내 얼굴도 어둡게 저물 것입니다.
- 김중일 / 우리의 얼굴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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